Intro

나는 지금 고민하고 있다. 어떤 문장을 써야 할까? 어떻게 글을 써내려갈까? 여러 생각이 떠다니는 와중에 그 생각들을 어떻게 엮을지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비단 글을 쓰는 것뿐 아니다. 삶의 매 순간은 선택의 연속이다. 작게는 하나의 문장에서부터, 어디로 여행을 갈지, 어느 회사의 주식을 살지, 어떤 기업에서 일할지, 어떤 영역에서 사업할지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인류가 발전하면서 나같이 특별할 것 없는 개인에게도 넓은 폭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굉장히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본인의 선택들이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꽤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이 높은 자유도는 세상이 복잡해지고 역동적이 되면서 더 두려운 존재가 된다. 이제는 평생직장은 고사하고, 10년 후 어떤 직종이 남아있을지조차 판단하기 어렵다. 거주할 도시를 선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나라로 이주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좋은 선택을 내리는 능력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사실은 대중에 반하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고등학생이던 10년 전 또래의 대다수는 선택하는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일이 없었다.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지, 어떤 문화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낭비로 여겨졌다. 선택하는 능력을 기르기보다는 주위에서 주요 선택들이 모두 정해진 상황에서 할 일들만 주어졌고, 그 일들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이 중요했다. 그런 상황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대입도, 입사도 모두 정해진 양식이 있어서, 그 양식에 맞춰서 최대의 점수를 얻어내는 사람이 승리자로 여겨졌다. 물론 그 길에 선택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암기할지, 어떤 숙제에 얼만큼의 시간을 할애할지 등 그 안에서도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있었을 것이고,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하지만 이런 선택을 하면서 생긴 능력은, 살면서 부딪치는 어려운 선택지들 사이에서 좋은 결정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좋은 선택을 내리는 능력은 한순간에 생기지 않는다. 이 능력 역시 다른 어려운 능력들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난이도를 높혀가야만 발전할 수 있다. 쉬운 결정들만 수없이 내리면서 후에 어려운 결정도 잘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구구단만 외우면서 후에 미분방정식을 잘 풀기를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려운 선택을 해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시간만 지나면 좋은 선택에 대해서 생각하기는 더욱 쉽지 않다. 실력이 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만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나에게 좋은 선택이라기보다는 가장 안전해 보이고,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선택들만 하게 된다. 다른 나라에서 거주하거나,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것은 굉장히 강한 의지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삶이 바람직했었던 시대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섭게 변하는 지금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생존 자체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내과 의사는 성공한 사람이지만, 10년 후에 머신러닝으로 무장한 컴퓨터들보다 더 좋은 진단을 내릴 수 있을까? 쏟아져나오는 논문과 수많은 진료 사례들을 다 읽어볼 수 있는 머신보다 말이다. 이 사람이 지금의 생존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이런 세상이 온다면 이 의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조금 더 미리, 넓은 폭에서 선택지를 고려했기를 후회하지 않을까? 좋은 선택에 대해 계속 고민하지 않으면, 내가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안 좋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억지로 골라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세상에서는 인간이 기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공 지능의 수준이 10년 뒤에 그 정도로 위협적이 될 것 같지는 않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상당히 존재할 것이라 믿는다. 이 의사도 지금과는 다른 형태로 자신의 강점을 살려서 오히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좋은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기계는 쉽게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의 결정들을 말이다. 이렇게 되면 발전한 문명은 지렛대 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나머지 일들은 기계에 위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좋은 선택을 내리는 능력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좋은 선택이란 시험지의 오지선다에서 택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정의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는 면에서 더더욱 어렵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 관한 것인지에 따라 좋은 선택이 나쁜 선택이 되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상황 파악도 중요하다. 이 블로그는 내 능력을 기르기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능력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나 스스로 능력의 부재를 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지금까지 쓴 글들이 어떻게 선택을 잘하는 능력과 연관이 있는지의 관점으로 정리한 좌표이다. 물론 명확하게 구분되지도 않고, 엉성하지만 지속해서 글들이 추가되면서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1. Retrospect: 실제로 내가 내린 선택에 관한 회고
    1. (2015-12) Review of 2015
    2. (2015-10) Why U.S.?
    3. (2014-12) Review of 2014
    4. (2013-12) Review of 2013
    5. (2013-05) Why Tesla?
  2. Digest: 좁은 주제에 관한 타인의 생각이나 주변 상황을 정리
    1. (2016-01) Leadership without Privilege
    2. (2015-12) Review of 2015 (Books)
    3. (2015-11) Empowering Employees
    4. (2014-09) The Art of Explanation
    5. (2013-07) Reid Hoffman: the Start-up of You
  3. Deduction: 복잡한 현실을 최대한 무시하고, 백지에서 해본 생각
    1. (2015-08) Choice Architecture
    2. (2015-08) Shareholder Capitalism?
    3. (2015-04) Egg-Dropping Puzzle
    4. (2014-01) Democratizing Financial Service